국화

일본의 미술 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조선의 민화를 처음 보고 충격에 빠져 이를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이라 했다. 불가사의하게 아름다운 민화 속에 자주 등장한 소재는 꽃. 그중에서도 국화는 모란이나 연꽃처럼 장수를 의미하는 꽃으로 병풍이나 민화의 소재로 사랑받았다. 또한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선비들의 결기를 표현하는 소재였다. 특히 국화는 늦가을 서리를 맞고도 그 모습을 잃지 않는 생태학적 속성에서 비롯한 길상의 뜻과 중국 도연명이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소나무와 국화를 벗삼아 살았다는 고사에서 비롯해 은인자중하는 군자의 상징으로 여겼다.

국화를 읊다
서리를 견디는 자태 외려 봄꽃보다 나은데
삼추를 지나고도 떨기에서 떠날 줄 모르네.
꽃 중에서 오직 너만이 굳은 절개 지키니
함부로 꺾어서 술자리에 보내지 마오.
-이규보

2001년 프랑스 기메 미술관에서 열린 <조선 미술품 소장전> 작품 가운데 이우환 선생 소장 병풍화 중 모란과 국화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 있었다. 유물에서 국화를 발췌해서 작업하던 중 탁본의 효과를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에 불투명 물감으로 찍어서 원단을 제작했다. 커튼이나 소파 덮개, 전등 갓 등을 만들었는데 전등 갓을 만들었을 때 가장 느낌이 좋았다. 탁한 염료로 만든 원단이라 전등 갓을 만드니 조명이 한 단계 걸러져 밖으로 은은히 퍼지는 게 실내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이걸 볼 때마다 디자이너가 좋은 그림만 만든다고 잘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용하는 재료의 물성을 잘 알아야 하고, 어디에 쓰일 것인지를 고려해야 하고, 빛과 어찌 교감하는지를 통섭적으로 고려해서 디자인해야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소재의 크기도 사용할 공간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아주 크게 확대해 보기도 하고, 아주 작게 축소해서 균일하게 또는 불규칙하게 배열하면서 디자인 의도에 맞게 다양하게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 민화 / Folk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