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선
15~16세기는 조선백자가 지향한 순백이 완성된 때이자 조형적인 면에서도 최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소박하고 자유분방한 분청사기와 함께 순백색의 절제미가 돋보이는 조선백자는 조선 시대 도자기의 백미다. 특히 백자 항아리의 조형미가 높이 평가되는데 높이가 높고 몸체가 유려한 곡선을 지닌 입호立壺, 구 모양의 원호圓壺, 큰 항아리라는 뜻의 대호大壺가 있다. 입호는 수직으로 높은 모양인데 어깨 부분이 널찍하고, 몸체로 내려올수록 좁아지는 장신의 항아리다. 원호와 대호는 때때로 ‘달 항아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백자 대호를 사랑한 화가 김환기가 모양이 ‘달’과 같다 해서 ‘달 항아리’라 부른 게 시초가 되었다. 달 항아리는 알려진 것처럼 크기 때문에 한 번에 물레질을 할 수 없어 아랫부분과 윗부분으로 나누어 물레 성형을 한 뒤 맞붙이고 접합 흔적을 정리해 굽는다. 공처럼 동그란 모양이라 다소 불안정한 모습이지만 작은 굽 위에 푸짐한 몸체가 놓인 모습이 둥실 떠오른 달과 같다. 예전에 발견된 달 항아리 중에는 술이나 장, 곡식 등을 담는 항아리로 쓰여서 몸체에 술이나 장 빛깔이 은은하게 밴 것도 있다. 둥글고 담백한 제 몸보다 담고 있는 것을 돋보이게 하는 미덕이 있어 꽃을 담는 꽃병으로도 사랑받았다. 모양은 소박해도 품고 있는 의미로 인해 가치가 높다.
입호와 원호 모두 부정형의 형태와 넉넉하게 품어 주는 맛으로 오늘의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도자기다. 백자호의 부정형적 원이 그리는 변화무쌍한 기형器形을 단순한 선을 통해 새로운 조형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검박한 미덕의 백자를 무늬로 만들기 시작했다. 백자를 그대로 쓰기도 했지만 외곽선만을 따고 백자의 백색과 청화백자의 청색을 같이 썼다. 높이가 높은 백자 입호의 외곽선을 뽑아서 벽지를 위한 무늬를 만들었다. 백자의 선만을 썼기에 무늬 이름도 ‘백자선’이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