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고려 시대에는 향로를 많이 만들어 썼다. 불교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시대라서 종교의식을 행할 때 신성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향로를 사용하기도 했겠지만 일상생활에서도 향을 자주 피웠다.
그중에서도 ‘고려청자 무량보주 투각향로高麗靑瓷 無量寶珠 透刻香爐’는 청자의 빛깔과 형태 면에서 고려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투각한 구 모양의 뚜껑과 연꽃 모양의 몸체, 세 마리의 토끼가 받치고 있는 판형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다른 형태의 세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었고, 음각, 양각, 투각, 퇴화, 상감, 첩화 등 다양한 기법을 결합한 걸작이다. 뚜껑과 몸체가 연결된 부분에 구멍이 있어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했는데 이 위에 투각한 둥근 보주를 두어 연기가 넓게 퍼지도록 했다. 연꽃 모양의 몸체는 꽃잎을 각각 따로 제작해 붙이는 첩화 기법을 사용해 세 겹으로 붙여 몸체와 받침의 연결 부분을 장식했다.
이 향로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투각한 둥근 보주였다. 고고학자 강우방 선생의 강의를 들으며 ‘보주’를 주목하게 되었다. “보주란 우주에 가득찬 생명력을 나타낸 것으로 원래 고정된 형태가 없으나 표현을 위해서 상상력을 동원해 공 모양을 차용한 것이다. 무량한 기운을 좀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정확한 구 모양이 아니라 투각해서 선으로 연결된 구 비슷한 모양을 만든 것이다. 신성한 동물인 용은 보주의 집적이므로 보주에서 영기문이 발산한다는 것은 용의 입에서 거대한 기운이 발산된다는 말이다. 연꽃 중앙에 사면 보주가 있는 고려청자 무량보주 투각향로는 위대한 상징을 갖고 있는 유물이다.”
이 영기문을 바탕으로 다양한 조형의 응용이 가능했다. 디자인에서는 흐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기에 원형의 조형을 내가 갖고 있는 방식의 흐름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 해의 유행 요소와 활용 목적에 맞게 무늬 안팎으로 색을 넣어 봤다. 무늬에서 세부 장식을 빼기도 하고, 선을 연결하면서 단순하게 발전시켰다.
작업을 하면서 찾아보니 전통 미술품 무늬에도 소재에 살을 붙이거나 뺀 작업들이 있었다. 또한 투각 향로가 원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라 직물에 레이저 가공을 해서 그 느낌을 그대로 살려 보기도 했고 쌈지처럼 바늘땀 장식으로 작업해 보기도 했다. 윤곽선만 남기고 작업한 뒤 다시 세부 장식을 넣어 단색으로 작업하기도 했다. 이렇게 작업한 것들을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에서 착안하여 여의보주문, 칠보문, 여의문보라 부르기도 하는데 모두 ‘길상’과 ‘복’을 의미하는 무늬라서 ‘복’ 무늬라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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