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해도_강물고기
동양에서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는다 하여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잉어는 남자를, 메기는 여자를, 작은 물고기떼는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기에 도자기나 가구에 물고기 무늬가 많다. 오래된 사찰에서도 물고기 무늬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있기에 혼돈과 산만 속에서 항상 눈을 뜨고 깨어 있으라는 일침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절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목어나 물고기 모양의 풍경이 바로 그 증거다.
또한 선비들이 많이 쓰는 문방구에도 물고기 무늬가 많이 등장한다. 해마다 봄이 되면 황하 상류의 용문이라는 협곡에서 잉어들이 다투어 뛰어오르며 센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데 여기에서 성공하면 용이 된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등용문’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학문에 힘쓴 선비가 성공해 높은 관직에 오른 것을 이 전설에 비유하곤 했기에 선비들이 물고기 무늬 소품을 애용했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접하다 보니 물고기를 소재로 삼으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락도’란 이름의 조선 민화를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사람이 물고기의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부러움을 표현한 것이다. 항상 깨어 있는 물고기, 풍요와 조화를 상징하는 물고기, 성공의 대표적 상징인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이 ‘어락도’를 보자 그림이 떠올랐다. 전부터 작업을 하면서 조금씩 남은 자투리 원단들이 있었다. 버리기에 아까워서 모아 두었는데, 이 자투리 원단들로 조각잇기 하듯 ‘어락도’에 그려진 물고기를 만들었다. 조각마다 제각기 자기 이야기를 갖고 있는 자투리 원단들이 물고기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조각조각 이어져 의미가 더해졌다.
겸재의 ‘관동팔경’ 속에 있는 구름을 뽑아서 재작업한 ‘구름보기’ 무늬를 디지털 작업하면서 화면에 배경으로 깔았다. 손바느질로 만든 ‘물고기’를 사진 찍어 포토샵으로 작업한 후 한 마리씩 화면 위에 올려놓았다. ‘어락도’의 물고기들처럼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만들고, 이 물고기들을 보고 즐기는 ‘어락’을 표현했다. 이렇게 ‘강물고기’ 무늬가 탄생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법을 혼용하여 만들어 낸 대표적인 무늬다.
* 민화 / Folk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