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신
불과 20년 전만 해도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나 이미지, 상징성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즘 같지 않았다. 무늬 디자인을 하면서 서양의 좋은 자료를 보면 볼수록 우리네 정서에 맞는 무늬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한국적인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우연히 윤석남 작가의 작품을 보았다. 나무를 소재로 작업하는 윤 작가가 나무에 꽃신을 그려 수백 개를 설치했는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꽃신이라 하면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젊은 부녀자들이 주로 신던 것이다. 가죽으로 틀을 만들고 융이나 삼베를 대고 곱게 기워 그 위에 청홍색의 무늬 있는 비단을 붙인 다음 보색이 되는 색실로 온갖 꽃과 나비를 수놓아 예쁘게 만든다. 특히 부귀를 뜻하는 모란을 수놓은 꽃신이 많았다.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여자들의 운명과 자의식을 일깨우는 작업을 해 온 작가답게 윤 작가의 꽃신은 신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통나무를 신발 모양으로 조각하고, 그 위에 꽃신 모양을 그렸는데 가운데 발을 넣을 수 있는 홈을 파지 않은 것이다. 과거의 여자들은 대부분 꽃신을 신을 형편이 안 되었고, 바라만 봐야 하는 환상이고, 희구의 대상이었기에 신어 보지 못한 것의 고귀함과 화려함을 말하고자 신을 수 없는 꽃신을 나무에 그려 넣은 것이다.
작가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어서 그것을 소재로 디자인을 시작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 후로 2년 동안 이렇게 저렇게 들여다보고 만들어 보았지만 맘에 차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단순히 배열을 해보니 그림이 나왔다. 첫 그림이 나오자 작업에 속도가 붙어 금세 무늬가 만들어졌다. 무늬 만드는 과정이 그렇듯이 원본의 색상들을 분판하는 과정에서 예상 못한 결과물들이 중간중간 나타났다. 바닥의 색을 붉은색, 분홍색, 은색 등으로 바꾸니 매번 느낌이 다른 무늬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완성된 꽃신 무늬는 소개하자마자 반응이 좋아서 10년 이상 꾸준히 사랑받는 무늬가 되었다. 고민이 길었던 만큼 보람도 있어서 대표작을 이야기할 때면 늘 먼저 꼽는 작품이다.
* 생활 소품 / Household Ite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