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모란 牡丹

꽃 중의 꽃, 꽃의 여왕이 모란이다. 예로부터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부귀화라 하였고, 영원한 생명의 생성을 의미하는 꽃이라 했다. 궁에서는 물론이고 일반에서도 혼례용 원삼이나 활옷에 또 경사스런 일에 축하의 의미로 쓰이던 꽃이다. 둥글둥글 뻗어 나가는 조형, 그 안에 표현된 씨방이나 꽃잎 등은 단순히 식물이 아닌 무한한 기운의 생성을 상징한다.

경남 양산 통도사의 문살에는 과감하게 단순화한 모란 무늬가 투각되어 있다. 단단한 나무에 동일한 무늬를 반복적으로 투각하되 영기문靈氣文의 기본 틀은 유지해야 하니 무늬를 단순화한 결과물로 보이는데, 결과적으로 오늘의 디자인에 그대로 반영해도 손색없을 만큼 현대적인 무늬다. 1960년대 이후 여학교에서 가정 시간에 서양 자수를 배운 분들이 글과 그림을 수놓아 혼수로 만들던 횟대보에도 부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의미로 모란과 새를 수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늬가 예뻐서 사용하는 것이지 그 기원이 모란에서 비롯되었음은 알지 못한다. 어떤 의미로든 부귀와 장수를 염원하는 마음이 알게 모르게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오래전 북촌 한옥들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조용한 골목을 유지하던 때, 개축 관계로 지인의 오래된 한옥을 들여다보다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방 안의 벽지 한쪽이 찢겼는데 그 속에 여러 장의 벽지가 겹쳐 있었다. 그동안 그 집에 살아온 사람들이 덧붙인 벽지가 고스란히 그 안에 남아 있었다. 그중 노르스름한 미색 바탕의 흐릿한 사방연속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모란 무늬였다. 평범하지만 근대 문화의 자취가 남아 있어 흥미로웠다. 사방연속완자무늬에 모란이 그려진 벽지는 저렴한 재료로 만들어 내서 질감이 거친 종이 벽지였다. 그 느낌과 질감을 최대한 살려 디자인했다.

이렇게 모란을 만나면 때로는 부귀영화가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나라고 큼직하고 가능하면 사실적으로 디자인하기도 하고, 꽃은 최대한 누르고 잎사귀만 도드라지게 디자인하기도 한다. 때로는 윤곽만 따서 연한 배경색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동판화처럼 눌러 찍은 느낌을 내기도 한다. 횟대보의 자수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실사로 찍기도 하고, 모란과 새가 어우러져 있는 화조도의 픽셀이 깨진 것처럼 디자인하기도 하고, 두툼한 질감을 살리려 재커드에 올려 보기도 한다. 모란에 관해서라면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많아 소재가 다양하니 디자인도 끝이 없다. 내가 디자인한 무늬 가운데 모란을 주제로 한 디자인이 가장 많은 것을 보면 상징 면에서나 조형 면에서나 모란은 무늬 디자이너에게 화수분 같은 주제이다.

* 민화 / Folk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