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으는 동물들
조선 시대 그림 중에 우리 민족의 정서를 반영해 화려하게 발전한 것이 민화이다. 단순히 조형 언어로서의 회화가 아니라 내용부터 상징성이 강한 작품들이 많다. 다양한 소재에 상징성을 부여하며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민화는 강렬한 색채와 해학적인 요소를 담아 소박하면서도 가장 한국적이다. 애초에 잘 그리려 그린 것이 아니라 솔직한 마음으로 우리네 사는 이야기를 담았기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표현이 잘 나타나 있다. 일반적 조형 원리를 과감히 탈피했기에 현실이 아닌 이상 세계를 표현하기가 편했는지도 모른다.
가회박물관에서 윤열수 선생의 소장품을 보다가 소묘 같은 민화를 만났다. 네 폭의 그림 속에 사슴, 토끼 등이 날아다니는 듯했다. 토끼와 사슴의 동작이 귀엽고 예뻤다. 내가 본 민화 중 가장 간략하고 현대적인 작품이었다. 산의 정령들이 잘 표현된 이 민화는 명암을 드러내지 않고 간결한 선으로 이상 세계의 상징적인 숲을 그려낸 것이다.
고고학자 강우방 선생은 “이런 민화가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평면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면임에도 동물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묘사하여 이상 세계에서 동물들이 날아다니고, 피리 부는 소년이 탄 소 역시 허공에서 둥둥 떠다니듯 묘사된 것이다. 날아가는 새와 사슴과 토끼를 통해 꿈이나 환상을 그려 낸 이 작품을 무늬로 만들기 위해 신령한 세계를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소재가 되는 도안을 따서 무늬를 겹치면서 부분적으로 색을 입혔다. 이상향 속의 현실감을 잿빛의 음영으로 표현하고 질감이 드러나는 리넨류의 소재를 사용했다. 공간감을 완전히 배제한 이 평면적인 작품은 그래서 커튼보다는 벽지로 벽에 고정할 때 더욱 멋진 효과를 낸다.
* 민화 / Folk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