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반다리

우리나라의 주거 공간은 서양의 그것처럼 고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융통성이 있는 공간이다. 안방은 이부자리를 펴면 침실이 되고, 이부자리를 걷은 뒤 밥상을 들이면 식당이 되고, 손님이 오거나 가족이 모여 앉으면 거실이 된다. 식사 역시 서양처럼 큰 식탁에 함께 모여 식사하는 것이 아니라 둥글고 네모진 소반과 두레반을 두루 사용해 개별 상을 차렸다. 궁중에서 연회를 열 때도 큰 상은 고임을 진열하기 위함이고, 문무백관의 식사는 수십 개의 일인용 소반에 차려 냈다. 튼튼하고 네모진 통영반, 네모난 나주 소반, 호랑이 다리를 닮았다 하여 호족반 등 전해 내려오는 소반만 60여 종이 넘는다. 하나씩 놓아도, 여러 개를 모아 둘러 놓거나 세워 놓아도 조형미가 뛰어나서 고미술품 수집가 중에는 소반을 모으는 분들이 꽤 있다.

나 역시 조선 목기에 매료되어 고미술 사업을 하던 시기에 소반을 꽤 사들였다. 한 번은 조각이 분리된 상태의 소반들을 무더기로 구입하게 되었다. 목수들이 조립하는 작업을 지켜보는데 바닥에 흩어져 있는 다리의 유려한 선이 눈에 띄었다. 더러는 쪼개지고, 크기나 모양이 조금씩 달라 추상적이고 현대적으로 보였다.

조선 목기는 조각을 잇는 데 못이나 접착제가 아니라 양각과 음각의 부분들로 서로 끼워 맞추기에 그 모양이 더 멋있었다. 조각들을 몇 개 모아 사진을 찍어서 반복 배열하다가 윤곽선만 뽑아서 무늬를 만들었다. 동서양 어디에서도 원본을 찾기 어려운 나만의 추상적인 무늬가 되었기에 그 후로 나의 디자인 정체성에 큰 도움을 준 작품이다. 무늬 디자이너로서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들과 함께 작업할 기회가 가끔 생기는데 화문석으로 유명한 강화도의 장인과 연결이 되어 작업을 했다. 원단에 찍는 것과 달리 직조 과정을 거쳐서 무늬를 만들어 내야 했다. 추상적인 무늬가 좋을 듯해 소반다리 무늬를 화문석 위에 얹었다. 계단식으로 선이 들어가는 작업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시제품을 만들어 보니 색이 들어가는 부분이 디지털 작업할 때 화소가 쌓이는 모습과도 같아 원래도 추상적인 무늬가 더욱 추상적이고 현대적인 무늬가 되었다.

디자이너로서 부단히 고민하고 작업해서 만들어진 작품을 보는 기쁨과 달리 공동 작업은 함께하는 이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부분이라 과정이 더욱 복잡하고 힘들어 최선을 다해도 맘에 덜 차는 결과물이 나올 때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놀라운 결과물을 선물해 주기도 하기에 과정의 지난함을 알면서도 짬 날 때마다 다른 작가들의 전시회를 가서 보고, 우리 문화재를 살펴보면서 계속 발전적 공동 작업에 희망을 걸어 본다.

* 생활 소품 / Household Ite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