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책가도
지구 반대편에서 또 다른 세상을 찾기 위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벽안의 서양인들 눈에 한국은 어떻게 보였을까? 무명옷을 입고 뜨끈한 국밥 후루룩거리며 먹는 소탈한 사람들, 5백 년 왕조의 임금님을 모시고 어른을 공경하며,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통과의례를 정성으로 지키며 사는 이 나라를 그들은 어떻게 기록했을까?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 달리 여행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이색적이었다. 그런 기록들을 글로 쓰고,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 그려서 서양에 알린 책들이 있다.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 <새벽의 나라, 한국Korea Land of the Dawn>, <한국인의 가정 생활Koreans at Home> 등의 책들이다. 당시의 출판물 형식대로 작지만 알차게 제작된 책들은 표지부터 이국적인 느낌을 듬뿍 담고 있다.
영국 모노크롬 페인팅 작가인 사이먼 몰리Simon Morley는 주한 영국 대사였던 우덴Uden 대사의 소장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이 책들의 표지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에는 1800~1900년대 한국 역사와 생활의 기록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책 한 권을 대표하는 상징적 그림이 표지인데, 이런 책들의 표지를 모아 놓으니 서양인의 시각으로 본 한국의 인상이 어슴푸레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하얗게 빛깔을 통일하고 제목과 그림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멀리서 보면 잘 안 보이지만 작품에 다가갈수록 세부적인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는 형식으로, 발표 당시 문화계 인사들에게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모던 책가도는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원래 대상이 된 책 표지가 갖고 있는 상징성과 디자인적 요소를 사용했다. 세부적인 사항을 생략하고, 단순하게 표면만을 남겨 그 시간과 이야기들을 손때 묻은 질감과 색채로 표현한 것이다.
작업을 할 때 기본적인 과정 중 하나가 색을 나누는 과정이다. 사진을 제판하는 과정에서 뽑아낸 색상들을 오래된 듯한 색감으로 표현하니 그 책에 묻어 있는 시간의 이야기가 아스라하게 다가왔다. 외국인의 시각으로 보고 들은 우리네 사는 이야기를 외국어로 옮겨 놓은 글씨 책을 무늬로 옮긴 것이다. 빛바랜 주홍색과 청회색의 네모는 우리네 기와나 돌담을 떠올리게 하고, 빼곡이 책이 꽂혀 있는 책장 같은 것이 우리네 민화의 책가도를 연상시킨다. 커튼으로 만들어 설치하니 묵직한 책장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하고, 소파 덮개나 양탄자로 만들어도 느낌이 좋다.
* 생활 소품 / Household Ite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