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Twilight
경복궁이나 창덕궁 담을 끼고 걷다 보면 담에도 다양한 무늬를 넣어 지은 것을 알 수 있다. 벽돌로 쌓되 중간에 벽돌을 빼서 열 십자나 반달 모양으로 구멍이 나게 한 영롱담, 담벽에 꽃이나 동식물, 십장생, 길상 문자 등의 무늬를 만든 화초담 등이 그것이다. 나머지 부분에는 완자문이나 십자문을 반복적으로 만들었다.
장식이 화려한 화문담도 아름답지만 완자문이나 십자문은 무늬 디자인에서 오히려 소중하게 쓰인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 줄 배경으로 자주 쓰이기 때문이다. 마치 대나무로 짠 듯한 무늬 담을 배경으로, 전에 사진 찍어 놓았던 우면산의 해질녘 풍경, 역광에 내비치던 나무 그림자 사진을 조합해서 현대 산수화의 무늬를 만들었다.
작업을 하면서 해그림자가 긴 여름날 저녁,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고 있으면 구수한 밥 짓는 냄새와 함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오던 그 저녁의 따뜻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아스라한 기억을 오뉴월의 초록색으로 바꾸어 상큼하게 표현했다. 담녹색이라서 여름용 커튼으로 만들면 시원한 느낌도 들고, 우리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창문 너머 풍경을 집 안으로 끌어 들이는 차경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는 무늬다.
* 생활 소품 / Household Items